본문으로 건너뛰기Skip to content 1:1 문의 — [email protected]로 이메일 작성 Contact us — email [email protected]

ABF 기판 공급난: AI 가속기 병목의 숨은 주범

AI 가속기 공급망의 진짜 병목은 칩이 아니라 ABF 기판이다. 유니마이크론의 NT$537억 증설과 TWD 100.9억 후커우 공장 인수, 삼성전기의 6.78조원 베팅, 이비덴의 2.5배 증설 계획을 숫자로 분석하고, 마진 11.6%→24.8%의 의미와 한국 기판 클러스터의 기회·병목을 짚는다.

ABF 기판 공급난: AI 가속기 병목의 숨은 주범
🆓 무료 글 · 누구나 무료로 읽을 수 있는 글입니다

30초 요약

AI 가속기 공급망에서 가장 먼저 막히는 곳은 칩 팹도, HBM도 아니다. ABF(ajinomoto build-up film) 기판이다. 세계 최대 기판 업체 유니마이크론(Unimicron)은 2026년 설비투자를 NT$340억에서 NT$537억 이상으로 상향했고(2026-08), 2026-09-30에는 브리지스톤타이완의 후커우(Hukou) 공장 부지를 TWD 100.9억에 인수했다. 이비덴(Ibiden) CEO는 증설 계획을 웃도는 고객 문의가 이미 들어오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여기에 2026-09-28 삼성전기의 6.78조원 투자 발표까지 더하면 결론은 하나다. 기판은 '부품'에서 '병목'으로 이동했고, AI 붐의 불안은 칩이 아니라 기판에 있다.

Background: 기판이 왜 문제인가

ABF 기판이란 무엇인가

AI 가속기는 칩 하나로 돌아가지 않는다. GPU 다이에 HBM 스택이 옆에 붙고(2.5D 패키징), 네트워크 칩과 전원 관리 칩이 함께 들어가 하나의 거대한 패키지를 이룬다. 이 패키지를 메인보드에 연결하고, 칩과 외부 사이의 수천 개 신호를 재배선하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패키지 기판(package substrate)이다.

고성능 컴퓨팅용 기판의 사실상 표준 절연 재료가 ABF 필름이다. ABF는 아지노모토(Ajinomoto)가 개발한 빌드업 필름으로, 미세 회로 형성에 적합해 고다층·미세피치 기판의 핵심 소재가 됐다. 이 필름을 적층해 만드는 고다층 기판을 ABF 기판이라 부르며, 플립칩 볼그리드어레이(FC-BGA)가 대표적이다. 저가·저층 제품에 쓰이는 BT(bismaleimide triazine) 기판과 구분되는 영역이다.

ABF vs BT: 왜 하이엔드는 ABF인가

기판 시장은 스펙에 따라 명확히 갈린다. BT 기판은 메모리·모바일 AP 같은 상대적으로 저층·저속 제품에 쓰이고, ABF 기판은 고성능 컴퓨팅·네트워크·AI 가속기 같은 고층수·고속 제품에 쓰인다. ABF 필름은 미세 비아(via) 가공과 저유전 특성이 우수해 고주파·고속 신호에 유리하다. AI 가속기가 요구하는 수천 개 I/O와 고속 SerDes 신호를 감당하려면 ABF가 사실상 필수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전환 장벽 때문이다. BT 라인을 ABF 라인으로 바꾸는 것은 장비와 공정이 달라 간단하지 않다. 유니마이크론이 "레거시 BT 설비의 ABF 전환"을 2027년 캐파 확대 수단의 하나로 꼽은 것은, 그만큼 기존 ABF 라인의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 남는 BT 캐파를 ABF로 돌리는 것조차 증설 계획에 넣어야 할 정도로 ABF 캐파가 타이트하다는 신호다.

FC-BGA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FC-BGA 기판의 제조 과정을 알면 왜 증설이 느린지 이해할 수 있다. 코어(core) 기판 위에 ABF 필름을 적층하고, 레이저로 비아를 뚫고, 도금으로 회로를 형성하는 과정을 층마다 반복한다. 이를 빌드업(build-up) 공정이라 한다. 층수가 늘어날수록 이 사이클이 반복되고, 한 층이라도 불량이 나면 그때까지 쌓은 전체 기판이 폐기된다. 그래서 고층수 기판의 수율은 층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여기에 미세피치가 더해지면 노광 장비의 정밀도, 도금 균일성, 검사 능력까지 모두 최고 수준이어야 한다. 공장을 짓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수율을 잡는 것이다. 신규 라인이 양산에 들어가도 수율이 안정화되기까지 수 개월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2027년 하반기 양산 예정"이라는 발표 뒤에는 이 수율 램프업(ramp-up) 기간이 숨어 있다.

칩이 커질수록 기판이 병목이 된다

기판이 병목이 되는 이유는 구조적이다. 첫째, 칩이 커진다. 레티클 한계(reticle limit)를 넘어서는 칩렛(chiplet) 구조와 대형 AI 가속기 패키지는 기판 면적 자체를 키운다. 패키지 면적이 커지면 기판 한 장당 들어가는 재료가 늘고, 같은 생산라인에서 찍어낼 수 있는 매수가 줄어든다. 면적 증가는 곧 캐파 감소다. 칩은 작아지는데 패키지는 커지는 역설이 기판 업계를 압박하고 있다.

둘째, 층수가 늘어난다. 고속 신호를 손실 없이 전달하고, 수천 개의 입출력(I/O)을 감당하려면 더 많은 배선층이 필요하다. 고층수(high layer count) 기판의 제조 난이도는 층수에 비례하지 않고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한 층이라도 불량이 나면 전체 기판이 폐기되므로, 층수가 늘어날수록 수율은 떨어지고 수율이 곧 유효 캐파다.

셋째, 피치(pitch)가 미세해진다. 칩과 기판을 연결하는 범프 간격이 좁아질수록 요구되는 노광·도금 정밀도가 올라가고, 이를 안정적으로 양산할 수 있는 업체는 손에 꼽힌다. 미세피치 수율은 돈으로 살 수 없는 해자(moat)다. 돈이 있어도 수율이 없으면 캐파가 아니다.

2021~2022년의 데자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1~2022년 반도체 공급난 당시에도 ABF 기판 부족은 PC·서버 업계의 공공연한 병목이었다. 당시 기판 업체들은 증설을 발표했고, 2023년 수요 조정기를 거치며 시장은 한숨 돌렸다. 그러나 AI 가속기라는 새로운 수요 파도가 오면서 병목이 재현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 수요의 중심이 고층수·대면적·미세피치라는 최고 난이도 제품군에 몰려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증설 물량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스펙의 물량이 몰려오고 있다. 같은 '공급난'이라는 이름이지만, 스펙의 높이가 다르다.

Deep Dive: 숫자로 보는 공급난

유니마이크론: 마진이 말해주는 시장

유니마이크론의 2026년 상반기 실적은 기판 시장의 온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2026년 상반기 매출은 TWD 458.22억으로 전년 동기 대비 30.8% 늘었고, 순이익은 TWD 68.43억으로 42.55% 급증했다. 매출보다 이익이 더 빨리 느는 구조, 즉 영업 레버리지가 작동하고 있다. 고정비가 큰 장치산업에서 가동률이 올라가면 이익이 매출보다 가파르게 느는 것은 정석이다. 그 정석이 지금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가동률이 정점에 가깝다는 뜻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진이다. 2026년 2분기 매출총이익률은 24.8%를 기록했다. 2024년 4분기의 11.6%에서 18개월 만에 두 배 이상으로 뛴 것이다. 같은 기간 ABF 매출 비중은 52%까지 올라왔다. 저마진 일반 PCB와 BT 기판 비중을 줄이고 고마진 ABF로 믹스를 전환한 결과다.

chart-unimicron-margin-trend
Unimicron 분기 매출과 매출총이익률: 2024년 4분기 11.6% → 2026년 2분기 24.8% (3분기 실적 10-27 발표 예정)

매출총이익률이 18개월 만에 11.6%에서 24.8%로 뛴다는 것은 교과서적인 공급자 시장의 신호다.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 가격은 오르고, 가격은 마진으로 남는다. 유니마이크론이 고부가 ABF 비중을 52%까지 끌어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돈이 되는 쪽으로 캐파를 몰아주는 것은 공급난 시장에서 공급자가 취하는 당연한 행동이다. 고객 입장에서는 "ABF 라인을 잡지 못하면 물량을 못 받는다"는 의미다. 마진 궤적 하나가 시장의 권력 관계를 설명한다.

NT$537억 증설과 후커우 인수

유니마이크론은 2026-08에 2026년 설비투자(CAPEX) 가이던스를 NT$340억에서 NT$537억 이상으로 상향했다(2026-08 업계 리포트 인용 보도 기준). 약 58% 인상이다. 증가분의 80~85%를 ABF에 투입한다. 목표는 2027년까지 ABF 생산능력을 30~40% 늘리는 것이다. 수단은 세 가지다. 후커우 신규 부지, 기존 라인 최적화, 레거시 BT 설비의 ABF 전환이다.

후커우 인수는 이 계획의 핵심 조각이다. 2026-09-30 발표된 인수 내용은 브리지스톤타이완(Bridgestone Taiwan)의 후커우 부지·공장으로, 인수가는 TWD 100.9억, 19개 필지·14개 공장동, 부지 면적 63,048㎡에 달한다. 타이어 회사의 유휴 부지가 AI 기판 공장으로 바뀌는 것이다. 목적은 공시에 명시된 대로 고성능 기판의 장기 수요 대응이다.

후커우 딜의 재무적 무게를 재보자. TWD 100.9억은 2026년 상향된 CAPEX 가이던스 NT$537억의 약 19%에 해당하는 단일 딜이다. 부지·공장 인수에만 연간 설비투자의 5분의 1을 쓰는 것이다. 그만큼 후커우가 2027년 캐파 확대 계획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뜻이며, 동시에 이 딜이 틀어질 경우의 타격도 크다는 뜻이다.

같은 맥락에서 광복(Guangfu) 제2공장은 2027년 하반기 양산 예정이며, co-packaged optics(CPO)용 기판은 이미 복수의 고객에게 출하 중이다(2026-08 기준). CPO는 광트랜시버를 스위치 칩 패키지 안에 넣는 차세대 구조로, 기판 업체 입장에서는 AI 가속기에 이은 두 번째 고부가 수요처다. 유니마이크론이 CPO 기판을 이미 양산 출하하고 있다는 것은, 다음 병목까지 선점하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AI 가속기 기판이 현재의 병목이라면, CPO 기판은 다음 병목의 후보다.

3국 증설 레이스: 한국·일본·대만

공급난의 또 다른 증거는 경쟁자들의 동시다발적 베팅이다. 한국·일본·대만의 3강이 동시에 돈을 풀고 있다.

삼성전기는 2026-09-28에 AI 패키지 기판에 6.78조원(약 $4.99B)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단일 투자로는 업계 최대급이며, 2040년까지 세종 8조원·부산 15조원의 중장기 프레임워크도 함께 제시됐다. 국내 생산거점을 세종과 부산으로 이원화해 AI 기판 공급망의 자국화를 노리는 그림이다. 6.78조원이라는 숫자는 기판이 삼성전기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과거 기판은 적층세라믹콘덴서(MLCC)의 그늘에 있었다. 이제 AI 패키지 기판이 전면에 나섰다.

이비덴은 FY2026부터 3개 회계연도에 걸쳐 ¥5000억(약 $3.2B)을 투자하고, FY2028까지 현재 생산능력의 약 2.5배를 목표로 한다. 특히 이비덴 CEO는 증설 계획을 웃도는 고객 문의가 이미 들어오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아직 짓지도 않은 캐파에 대한 문의가 계획을 초과한다는 것은, 시장의 수요 전망이 공급자의 증설 계획보다 앞서 있다는 뜻이다. 공급자 스스로도 수요를 과소평가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CEO가 이런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이례적이며, 그만큼 시장의 열기를 보여주는 지표다.

LG이노텍은 베트남 하이퐁(Haiphong) FC-BGA 공장 확장 공사를 진행 중이며, 2027-05 완공을 목표로 한다. FC-BGA·FC-CSP·RF-SiP를 아우르는 패키지 기판 라인이다. 베트남 거점을 통해 원가 경쟁력과 지정학적 분산 효과를 동시에 노리는 포석이다. 미·중 공급망 재편 국면에서 '차이나 플러스 원' 생산거점의 가치는 기판에서도 통한다.

chart-abf-capex-race
ABF·FC-BGA 증설 레이스: 3국의 투자 발표 (2026년 9~10월 발표 기준, USD 환산)

세 회사의 발표를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패턴이 보인다. 증설 완료 시점은 2027년 하반기에서 2028년에 몰려 있다. 광복 제2공장 2027년 하반기, 하이퐁 확장 2027-05, 이비덴 2.5배 체제 FY2028. 즉 2026-10-17 현재부터 최소 1년 이상은 기존 캐파로 버텨야 하는 구간이다. 이 구간이 바로 공급난의 절정이다. 기판 공장은 발표한다고 바로 지어지지 않는다. 클린룸을 짓고, 노광·도금·검사 장비를 들이고, 수율을 잡는 데 통상 2~3년이 걸린다. 발표 시점과 가동 시점의 시차가 공급난의 지속 기간을 결정한다.

한눈에 보는 4사 증설 비교

기업투자 규모목표완공·가동 시점거점·특징
유니마이크론NT$537억+ (2026년 CAPEX, 80~85% ABF 투입)ABF 캐파 +30~40% (2027년까지)광복 제2공장 2027년 하반기 양산후커우 부지 인수(TWD 100.9억) + BT→ABF 전환, CPO 기판 양산 출하 중
삼성전기6.78조원 (약 $4.99B)AI 패키지 기판 대규모 증설단계적 집행 (프레임워크 ~2040년)세종 8조원·부산 15조원 중장기 프레임워크, 국내 자국화
이비덴¥5000억 (약 $3.2B, 3개 회계연도)현 캐파의 약 2.5배FY2028CEO "계획 초과 문의" 공개 언급, 수요 전망 상향 시사
LG이노텍비공개FC-BGA 공장 확장2027-05 완공 목표베트남 하이퐁, FC-BGA·FC-CSP·RF-SiP, 원가·지정학 분산

네 회사의 공통점은 증설의 이유를 '수요 대응'으로 명시한다는 점이고, 차이점은 거점 전략이다. 유니마이크론·이비덴은 기존 거점의 확장, 삼성전기는 국내 자국화, LG이노텍은 베트남 분산이다. 같은 공급난을 보고도 각자의 지정학적·원가 계산이 다르다.

병목의 메커니즘: 왜 돈으로도 못 사는가

기판 공급난이 쉽게 풀리지 않는 데는 세 가지 구조적 이유가 있다.

첫째, 소재 단의 집중이다. ABF 필름이라는 핵심 소재의 공급 구조는 기판보다 더 과점적이다. 필름 공급이 막히면 기판 캐파를 늘려도 소용없다. 기판 업체들이 증설을 발표할 때 필름 수급 전망을 함께 보는 이유다. 기판 증설 경쟁의 이면에는 필름 확보 경쟁이 있다.

둘째, 수율이 캐파다. 고층수·미세피치 기판은 설비 캐파와 실제 출하 캐파가 다르다. 수율 70% 라인 1만 장과 수율 90% 라인 1만 장은 시장에서 완전히 다른 존재다. 신규 라인의 수율이 안정화되기까지는 양산 시작 후에도 수 개월이 걸린다. 그래서 "2027년 하반기 양산 예정"이라는 표현 뒤에는 수율 램프업(ramp-up) 기간이 숨어 있다. 발표된 캐파 숫자를 액면 그대로 믿으면 안 되는 이유다.

셋째, 고객 인증의 벽이다. AI 가속기용 기판은 고객사(팹리스·하이퍼스케일러)의 까다로운 인증(qualification)을 통과해야 한다. 신규 공급자가 시장에 진입해도 인증에 1년 이상이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기존 강자의 캐파가 매진이면 고객은 기다릴 수밖에 없고, 이것이 공급자의 가격 결정력으로 이어진다. 인증은 신규 진입자에게는 해자이고, 기존 강자에게는 방패다.

검증·반론: 베팅의 이면

장밋빛 그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두 가지 리스크를 짚어야 한다.

첫째, 후커우 인수 공시에는 고객 선입금(customer prepayment)·물량 배정·공급계약에 대한 언급이 없다. TWD 100.9억은 자체 자금으로 조달되는 베팅이다. 수요가 제때 오지 않으면 새로 지은 캐파가 노는 '선증설 후수요' 리스크를 유니마이크론이 온전히 떠안는 구조다. 공급난의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수요 전망이 틀릴 경우의 최대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선입금 없는 증설은 확신이자 도박이다. 2021~2022년 공급난 이후 2023년 조정기를 기억한다면, 사이클의 변곡점에서는 이런 베팅이 가장 먼저 시험대에 오른다.

둘째, 유니마이크론은 2026-08에 원산지 세탁 의혹과 관련해 검찰 수색을 받았다. 회사 측은 분쟁 대상 제품은 일반 PCB이며 기판 사업과 무관하다고 밝혔고, 2026-10-17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다. 기판 공급 차질로 직결된 사안은 아니지만, 대형 고객사의 공급망 실사(supply chain due diligence) 관점에서는 주시해야 할 변수다. 지정학적 공급망 재편 국면에서 원산지 이슈는 단순한 법률 리스크를 넘어 고객사 이탈 리스크로 번질 수 있다. 특히 미국 수출 규제와 공급망 투명성 요구가 강화되는 흐름에서는 더욱 그렇다.

Chase's Take: 기판은 자본의 게임이 됐다

네 가지 관점에서 이 사태를 읽는다.

첫째, 산업 구조의 관점. 마진이 18개월 만에 11.6%에서 24.8%로 뛴 것은 기판 산업의 권력 이동을 보여준다. 과거 기판은 세트 업체의 단가 인하 압박을 받는 을(乙)의 위치였다. 지금은 공급자가 캐파 배분의 주도권을 쥐었다. ABF 비중 52%는 단순한 제품 믹스가 아니라 가격 결정력의 증거다. 필수 인프라 영역에서는 공급자가 가격을 정한다. 기판이 그 영역에 들어섰다.

둘째, 전략의 관점. 후커우 인수는 전형적인 캐파 선점(capacity preemption) 플레이이다. 과점 시장에서 먼저 짓는 자가 물량을 가져간다. 브리지스톤이라는 타이어 회사의 유휴 부지를 기판 공장으로 전환한다는 발상 자체가 타이완 내 증설 부지 확보전의 치열함을 보여준다. 다만 선입금·공급계약 언급 없이 자체 자금으로 TWD 100.9억을 베팅했다는 점은 양날의 검이다. 수요 확신의 표현인 동시에, 수요가 꺾일 경우 재무 부담이 고스란히 남는다. 2026-10-27 예정된 3분기 실적 발표에서 경영진이 이 베팅의 근거(수주 가시성)를 어떻게 설명하는지가 다음 관전 포인트다. 컨퍼런스콜에서 CPO 기판의 고객사 수와 ABF 수주잔고(backlog) 숫자가 나온다면 베팅의 실체가 확인될 것이다.

셋째, 한국 클러스터의 관점. 대덕전자·코리아써키트·심텍은 패키지 기판의 전통 강자이지만, AI 가속기용 고층수 FC-BGA에서의 존재감은 아직 대만·일본 대비 제한적이다. 반면 삼성전기의 6.78조원과 LG이노텍의 하이퐁 확장은 대기업 캐파로 추격하는 그림이다. 한국의 기회는 명확하다. 대기업의 대규모 베팅, 그리고 그 뒤를 받치는 소부장 생태계(기판 장비·소재)이다. 병목도 명확하다. ABF 필름 같은 핵심 소재의 해외 의존도와 미세피치 고층수 수율이다. 필름을 쥐지 못하면 기판 캐파를 늘려도 원가 구조가 흔들린다. 한국 기판 산업의 다음 과제는 '캐파의 양'이 아니라 '스펙의 높이'다. AI 가속기가 요구하는 최고 스펙 기판을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양산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6.78조원이라는 베팅이 스펙 경쟁력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

넷째, 다음 병목의 관점. 유니마이크론이 CPO용 기판을 이미 복수 고객에 출하 중이라는 사실(2026-08 기준)은 현재의 병목 너머를 보게 한다. AI 가속기 기판이 현재의 병목이라면, CPO 기판은 다음 병목의 후보다. 광 패키징으로의 전환이 본격화되면 기판 업계는 또 한 번의 스펙 점프를 요구받는다. 지금의 증설 레이스에서 이긴 업체가 다음 레이스의 출발선에 서게 된다. 기판 산업은 이제 단발성 사이클이 아니라 연속된 스펙 경쟁의 시대에 들어섰다.

비즈니스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함의는 하나다. 공급망의 권력이 칩 설계사에서 기판사로 이동하는 순간, 시스템 업체(하이퍼스케일러·GPU 벤더)는 HBM을 확보하듯 기판 캐파를 선점해야 한다. 장기공급계약(LTA)과 선입금 구조가 기판 시장에도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먼저 움직인 자가 2027년을 산다. 기판을 '구매'가 아니라 '확보'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Implications: 투자와 경영의 시사점

투자 관점에서는 기판 업체의 실적 레버리지를 주목해야 한다. 마진 24.8%는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 캐파가 매진인 상태에서 추가 증설 물량이 나오기까지 1년 이상이 남았기 때문이다. 다음 체크포인트는 2026-10-27 유니마이크론 3분기 실적 발표다. ABF 비중과 마진 추이가 유지되는지, 후커우 인수 이후의 CAPEX 집행 속도가 어떤지가 관건이다. 리스크는 앞서 짚은 대로 자체 자금 베팅의 재무 부담과 2026-08 이후 진행 중인 원산지 관련 수사이다. 마진 확대가 가격 인상에 기인하는지, 믹스 개선에 기인하는지도 구분해서 봐야 한다. 전자라면 지속 가능성이 높고, 후자라면 한계가 있다.

경영 관점에서는 AI 서버·가속기를 만드는 기업이 기판 듀얼소싱과 캐파 예약을 지금 시작해야 한다. 칩 설계가 끝나도 기판이 없으면 출하가 안 된다. 2027년 하반기까지 타이트한 시장이 이어질 전망이므로, 2026년 안에 장기공급계약을 묶는 것이 유리하다. 특히 CPO 전환이 본격화되면 광 패키지용 기판이라는 새로운 병목이 추가될 수 있어, 기판 소싱 전략은 AI 가속기용과 CPO용을 함께 봐야 한다. 팹리스 입장에서는 기판 공급사를 설계 초기부터 끌어들이는 '얼리 인게이지먼트'가 필수가 된다.

한국 소부장 관점에서는 기판 장비·소재 업체의 동반 수혜를 기대할 수 있다. 삼성전기 6.78조원, LG이노텍 하이퐁 확장, 유니마이크론 NT$537억 증설은 모두 장비 발주로 이어진다. 노광·도금·검사 장비와 동박적층판(CCL) 소재 업체가 1차 수혜층이다. 기판 캐파 증설의 낙수효과는 장비·소재 단에서 먼저 나타난다. 정책 관점에서는 ABF 필름 같은 핵심 소재의 국산화와 고층수 기판 기술 지원이 공급망 안보 차원의 과제로 남는다.

시나리오별 전망

기본 시나리오는 2027년 하반기~2028년 수급 완화다. 발표된 증설 물량이 수율 램프업을 거쳐 시장에 풀리는 시점이다. 강세 시나리오는 CPO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광 패키지용 기판 수요가 가세해 2028년까지도 타이트한 시장이 이어지는 경우다. 유니마이크론이 CPO 기판을 이미 양산 출하 중이라는 점은 이 시나리오의 복선이다. 약세 시나리오는 AI 인프라 투자 속도가 조정되면서 선증설 물량이 부담으로 돌아서는 경우다. 후커우처럼 선입금 없이 자체 자금으로 베팅한 캐파가 가장 먼저 시험대에 오른다. 세 시나리오 모두 2026-10-27 유니마이크론 3분기 실적과 2027년 상반기 증설 진척도가 분기점이 된다.

FAQ

Q1. ABF 기판이 왜 갑자기 병목이 됐나요? 칩이 커지고(레티클 한계 초과 칩렛·대형 패키지), 층수가 늘고(고층수), 피치가 미세해지면서 기판 제조 난이도가 급등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증설에는 공장을 짓고 수율을 잡는 데 2~3년이 걸립니다. 2026-10-17 현재 주요 증설 물량의 완공 시점은 2027년 하반기~2028년에 몰려 있어, 그 전까지는 기존 캐파로 버텨야 합니다. 2021~2022년 공급난의 데자뷔이지만, 이번에는 최고 스펙 제품군에 수요가 몰려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Q2. 유니마이크론의 후커우 공장 인수가 왜 중요한가요? 2026-09-30 발표된 TWD 100.9억 규모의 인수는 2027년까지 ABF 생산능력을 30~40% 늘리겠다는 계획의 핵심 조각이기 때문입니다. 19개 필지·14개 공장동·63,048㎡ 규모의 부지를 확보했다는 것은 타이완 내 증설 부지 확보전의 치열함도 보여줍니다. 인수가는 연간 CAPEX 가이던스(NT$537억)의 약 19%에 해당하는 단일 딜입니다. 다만 공시에 고객 선입금·물량 배정·공급계약 언급이 없어 자체 자금 베팅이라는 점은 리스크입니다.

Q3. 한국 기업에는 어떤 영향이 있나요? 삼성전기가 2026-09-28에 6.78조원을, LG이노텍이 베트남 하이퐁 FC-BGA 공장 확장을 발표하면서 한국도 AI 기판 레이스에 본격 참전했습니다. 대덕전자·코리아써키트·심텍 등 기존 강자와 대기업 캐파가 맞물리면 한국 클러스터의 위상이 올라갑니다. 다만 ABF 필름 등 핵심 소재의 해외 의존도와 미세피치 고층수 수율은 여전히 병목입니다. 한국의 과제는 캐파의 양이 아니라 스펙의 높이입니다.

Q4. 공급난은 언제 풀리나요? 주요 증설 일정을 보면 유니마이크론 광복 제2공장 2027년 하반기 양산, LG이노텍 하이퐁 확장 2027-05 완공, 이비덴 FY2028 2.5배 체제가 예정돼 있습니다. 이 물량이 본격 가동되는 2027년 하반기~2028년부터 수급이 완화될 전망이며, 그 전까지는 타이트한 시장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수율 램프업 기간을 감안하면 발표된 캐파가 시장에 온전히 풀리는 시점은 더 늦어질 수 있습니다.


본 글은 2026-10-17 기준 공개된 기업 공시와 보도를 바탕으로 한 분석이며,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Sources

  • 삼성전기 6.78조원 투자 발표 (2026-09-28): https://www.techtimes.com/articles/328150/20260928/samsung-electro-mechanics-commits-5-billion-ai-chip-substrates-record-bet-hits-upstream-wall.htm
  • ABF 병목 구조 분석 칼럼 (2026-10): https://techsoda.substack.com/p/dr-change-column-15-as-chips-get
  • 유니마이크론 후커우 인수 공시 보도 (2026-09-30): https://www.ad-hoc-news.de/boerse/news/corporate-news/unimicron-bought-hukou-sites-unimicron-stock-sits-11-62-percent-below-its/70298283

댓글

VLSI KOREA BRIEFING

반도체를 읽는 안목, 메일함으로.

엔지니어의 시각과 산업의 흐름을 함께. 무료로 구독하세요.

이미 구독 중인가요? 로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