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가 해외 지사로 취업한다면 알아야 할 것들

엔지니어가 해외 지사로 취업한다면 알아야 할 것들
Photo by Kyle Glenn / Unsplash

해외 취업을 꿈꾸는 반도체 엔지니어라면, "미국 본사"만 생각하기 쉽다.

현실적으로, 미국은 신분 준비가 어렵다. 그 다음 목표는 싱가포르, 독일 같은 해외 지사다. 나도 해외의 삶을 꿈꾸면서 "Out of Korea"면 어디든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최근 IT 업계 선배와 긴 대화를 나누고 나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그녀는 공대 출신이고, 시가총액 최고 IT 기업 국내지사에 입사, 해외 지사들을 거쳐 수십년 동안 글로벌 IT 업계에서 일한 베테랑이다. 현재는 임원으로 있다.


1. 지사에는 "천장"이 있다

선배가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은 이거였다.

"본사가 아닌 이상, 지사에는 천장이 있다." 그리고 그 천장은 내국인의 자리일 가능성이 높다.

선배는 여러 성과를 쌓으면서 시니어 레벨까지 고속 승진을 했지만, 임원 레벨부터는 네트워크 게임이라는 것을 느꼈다. 특히 디렉터 레벨부터는 완전히 관계 중심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예시를 들면 이런 식이다. A회사에 John과 Jane이 있다고 하자.

  • John: 고객과 같은 국적, 같은 대학, 같은 학과, 같은 연구실 출신
  • Jane: 고객과 다른 국적, 다른 대학, 다른 학과, 다른 연구실 출신
    • 그러면 당연히 고객은 본인과 "신뢰와 관계"가 있는 John에게 일을 수주 할 것이고, A 회사도 당연히 John에게 먼저 업무를 할당하게 된다.
    • 이렇게 되면 John이 Jane보다 성과를 쌓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로 내가 우리 회사의 유럽 특정 지사를 알아봤는데,

  • 그 지사에서 가장 높은 직급도 디렉터였다.
  • 그리고 그 디렉터는 그 나라 국적의 사람이고, 그 나라의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었다.

지사장이 내국인이 아닌 경우를 찾아보려고 했다.

  • 지사가 생긴지 얼마 안 된 곳이나 구조 재조정이 필요한 곳은 본사 인원을 파견한다.
  • 지사가 생긴지 오래되었고, 재무적으로 탄탄한 글로벌 대기업들은 내국인을 고용한다.

핵심은 이거다:

  • 지사에서 시니어 레벨까지는 실력으로 갈 수 있다. 임원 초기 레벨부터 매우 어려워지고, 지사장은 불가능에 가깝다.
  • 시니어 위는 로컬 네트워크가 작동하는 구간이다.
  • 지사장은 대부분 그 나라 국적 사람이 된다.

2. 임원부터는 네트워킹 게임이다

기술직에 있으면 "실력이면 되지"라고 생각하기 쉽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선배의 말은 명확했다.

"임원부터는 내 실력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내 고객, 내 조직원, 내 매니저와의 네트워킹이다. 누가 널 알고, 누가 널 밀어주느냐. 혼자 잘하는 것으로 성공 할 수 있다면, 모든 교수들이 세계 최고의 부자들이어야 한다."

미국 본사라고 다를까?

  • 미국 빅테크와 반도체 회사들의 임원진을 보면, 인도계와 중국계 네트워크가 매우 강하다. 그리고 그 사람들도 대부분 미국 대학을 졸업했다. 같은 학교 선후배, 같은 커뮤니티 출신끼리 서로 밀어주는 구조가 이미 형성되어 있다.
  • 그래도 외국인으로써 지사장이 되는 것보다는 가능성이 훨씬 높다.

반면 한국인은? 솔직히 말하면, 해외에서 한국인끼리의 협업 네트워크는 약한 편이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현실이다. 그나마 카이스트 등 일부 한국 대학들은 미국 내 교우회가 끈끈하다.

3. 그래서, 해외 지사 오퍼를 받으면?

선배에게 직접 물어봤다. "본사가 아닌 곳에서, 해외 기회가 오면 어떻게 하는 게 좋냐"고.

대답은 심플했다.

"좋은 분야, 좋은 회사에, 영주권까지 지원받을 수 있으면 — 무조건 가라. 한국에서 너가 누리는 것들은 나중에도 누릴 수 있다."

조건을 정리하면:

  • 좋은 분야: 성장하는 분야인가? 일 할 가치가 있는가?
  • 좋은 회사/팀: 좋은 프로젝트들이 있고, 그 지사가 단순 서포트 뿐만 아니라, 실제 제품 개발을 하는가?
  • 영주권 지원: 취업 비자만 주는 건지, 영주권 트랙까지 있는 건지?

이 세 가지가 다 맞으면 가라는 거다. 하나라도 빠지면 신중하게 고민하라고.

내 대답은 갸우뚱 했다.

  • 나는 이전에 해외 취업 기회가 한 번 있었다.
  • 한국보다는 돈을 몇 배는 더 받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생활비 때문에 저금을 많이 할 수 없었으니까 손해라고 느꼈다.
  •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여러가지 일들이 중간에 끊기는게 싫었다. 나는 다 마치고 가고싶었다.
  • 그리고 저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요?

선배: 어차피 너가 해외 이주 하면, 너 아직 결혼도 안 했으니까, 쉐어하우스 같은거로 시작할텐데. 나도 옛날에 그랬고. 돈은 아끼면서 대기업 IT 엔지니어로 다니면, 알아서 모여. 너가 하는 일들 대부분은 나중에도 할 수 있는 것임. 그리고 너가 '한국여자만 만나야돼'! 이런 것이 아니라면, 기회 진짜 많아. 요즘 한국인 좋아하는 외국인도 많고.

4. 해외 지사, 가기 전에 체크할 것들

선배의 조언과 내 경험을 합쳐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봤다.

커리어 천장 확인

  • 그 지사에서 가장 높은 직급의 외국인은 누구인가?
  • 지사가 하는 일이 고객 서포트에서 끝나는가? 아니면 제품 개발까지 하는가?
  • 취업비자만 주는지, 영주권 스폰서까지 하는지
  • 영주권 없이 오래 머물면, 회사에 종속되는 구조가 된다
  • 연봉 대비 생활비, 세금, 집값
  • 가족 동반 시 교육, 의료 환경
  • 한인 커뮤니티 규모 (생각보다 중요하다.)

마무리

해외 취업은 분명 좋은 기회다. 하지만 "나간다"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되면 안 된다. 어디서, 어떤 조건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특히 엔지니어는 기술직이라 "실력이면 된다"는 믿음이 강한데, 디렉터 이상부터는 그 규칙이 바뀐다. 지사에서의 천장, 네트워크의 현실, 영주권의 중요성 — 이런 것들을 미리 알고 가는 것과 모르고 가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 될 거다.

선배의 한마디로 마무리한다.

"엔지니어에 MBA 출신은 어디든 기회가 있다. 하지만 해외 기회는 타이밍이 있다. 조건이 맞으면,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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